[동아경제신문] 김대중정부 햇볕정책은 국민의 적극 지지를 받았다. 금강산 관광 다녀오고 개성공단에서 우리 제품이 만들어졌다. 주식시장에서 한국 기업저평가라는 ‘코리아디스카운트’현상도 누그러지고, 휴전선 인근 땅값이 올랐다. 정치도 달라졌다. 대대로 보수정당이 이겼던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민주당 강원도 이광재 도지사당선이 한 예다. 세상이 달라졌고 통일은 멀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핵무기 개발하지 않겠다는 김정일의 공언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은 노무현정부에서 드러났다. 2006년도에 북한은 1차 핵실험으로 우리와 세계를 배신했다. 그 직후 강력한 응징이 있었어야 했으나 노무현 정부는 데면데면하다 엉뚱한 10·4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엔 더욱 노골적으로 핵과 운반수단인 미사일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전승절 행사에 천안문 망루에 시진핑, 푸틴과 함께 올랐다. 미국 동맹국 중에선 유일한 나라 대통령이었다. 중국이란 지렛대를 활용해 북한 핵개발을 막아보자는 노력은 가상했으나, 결국 오판이었다.
이런 북한 핵 위협은 우리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2021년 12월, 우리 국민을 상대로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가 여론조사를 했다. 한국도 핵무장해야 한다는 국민이 71%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전인 2019년 7월, 미국 국방대학교(NDU)에서 일단의 장교들이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동북아의 핵안보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제는 미국이 전술핵을 이 지역에 재배치하여 한국 및 일본과 공동 운용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2021년 10월 7일 미국 다트머스대의 제니퍼 린드(Jennifer Lind) 교수와 대릴 프레스(Daryl Press)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폭탄을 만들어야 하는가(Should South Korea build its own nuclear bomb?)”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제는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해야 하고 미국은 이를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2021년 4월에는 한국 아산정책연구소와 미국 랜드연구소가 공동 작성해 발표한 연구보고서는 ‘북한의 핵무기가 80~100개를 넘으면 한미 양국은 지금까지의 설득과 외교 방식을 넘어 선제공격, 참수작전 등을 포함하는 적극적인 핵억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2월 3일에는 미국 헤리티지재단 더그 밴도우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장려하고 지지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막기 위해 충분한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4일에는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군사 역사학자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기고를 통해 ‘한국 핵무장 결정하면 미 존중해야’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면? 그것은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이 해야 할 결정’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부터 남한을 불길에 휩싸이게(saturate) 만들 수 있는 전술핵까지 다양한 능력을 앞세워 질주해왔다’며, 미국이 다른 국가들의 핵무장에 대해 문제 삼지 않으면서, 북핵 대응 목적으로 한국이 핵무장을 검토하는 것만 문제 삼아서는 안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을 극적으로 증액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한 점이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안전보장 공약에 많은 한국 국민이 안심하지 못하는 이유도 쉽게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올해 4월 19일에는 이미 한국 독자핵무장을 주장한 제니퍼 린드 다트머스대 교수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북한의 (핵) 능력이 발전함에 따라 서울은 워싱턴으로부터의 안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며 ‘북한 미사일은 곧 미국 전역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동맹국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걸고 싶은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린드 교수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 공약은 위기 상황에서 지켜질 가능성이 희박한 약속에 기반을 두게 됐다"며 "단순한 (핵우산) 안심만으로는 더 이상 한국이 안심할 수 없으며,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 핵 억지 전략을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은 예외적 사건이 국가의 최고 이익을 위태롭게 할 경우 탈퇴할 수 있도록 한다"며 "한국은 NPT에서 탈퇴할 권리가 있다"고도 했다.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제10조 1항을 보면, 각 당사국은 당사국의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본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지상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음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같은 국내외 여론에 힘입어 독자핵무장론을 잠시 내비친 적이 있었고, 이를 통해 미국의 핵확장억제정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내 여론과 미국 전문가들의 이어진 주장으로 한국의 독자핵무장화 여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올해 4월 24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국민여론조사를 보면 독자 핵무장에 찬성하는 국민이 56.5%로 나타났다. 미국의 핵확장억제정책으로 2년 전보다 15% 낮아졌으나 여전히 국민 절대다수는 북핵과 미국약속을 불안하게 보고 있다. 독자핵무장화 이유에 이같은 점이 드러나는데, 순서대로 보면 1) 북핵위협대응 45.2% 2) 핵보유 균형 국익도움 23.3% 3) 유사시 미국 신뢰부족 17%, 4) 전술핵 재배치 신뢰부족 10.6% 등으로 나타났다. 북핵위협과 미국의 핵우산 약속에 대한 믿음이 약한 것이 주된 이유다.
그도 그럴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약속을 믿지 못하는 계기였다. 소련이 해체될 때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핵을 러시아에 돌려주면서 미국 등 서방 진영이 보장한 우크라이나 안전보장문서가 휴지조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믿을 건 우리 자신밖에 없다는 냉혹한 신냉전질서를 우리 국민이 깊이 각성하고 있는 것이 독자 핵무장 여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 핵무장을 반대하는 것은, 미국내 전문가들도 지적하듯이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개발을 고도화했다. 미국이 한국안보를 지킨다며 핵을 쓸 경우, 북한은 미국 본토를 선제 핵 공격할 수 있다고 공언 해왔다. 그래서 미국내 일부 안보관련 연구소들이 한국방어를 위해 미국이 핵 공격받을 수는 없다며 북한 핵은 한국 핵무장으로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지역에서 팽창주의 중국을 포위한 쿼드와 오커스동맹, 그리고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신을 확립했다. 그런데 미국과 그 동맹국이 방어하려는 동북아시아지역 중국과 북한과 러시아는 각각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동북아시아 동맹국 중에는 핵무기 보유국가가 한 군데도 없다. 전략무기의 심각한 비대칭 현상이고, 이런 힘의 균형이 무너질 때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인류역사의 일반법칙이다.
한국 독자핵무장을 반대하는 한국내 일부 진영도 모순이다. 그들은 틈만 나면 한미동맹을 위해 미국에 맡긴 전시작전권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핵이 없는 상태에서 핵 가진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전시작전권을 회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보기에 따라서는 첩자짓과 같다. 핵 없는 한국이 전시작전권을 가질 때, 핵을 가진 북한이 수시로 도발하리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스라엘이 이란과 시리아 등 주변국을 공습해도 반격당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폭격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국경을 넘어서 공격 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진영도 무기를 무제한 지원하기 어렵다. 이들 모두 상대 국가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무기인 핵무기는 전술적으로도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핵국가 대한민국이 핵무기 없이 전시작전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은 적을 돕는 이적행위다. 전시작전권 환수를 논하려면 그에 앞서 우리의 독자 핵무장화가 가능해야 한다.
생존은 흐름에 잘 적응하고 대응할 때 가능하다. 내년에 미국 대선이 있다. 미국우선주의를 부르짖는 트럼프 당선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이 현실이 된다면 주한미군 방위비의 급격인상 요구로 미군 철수 등을 지렛대로 적극 활용할 것이다. 그때 가서 우리가 독자핵무장론을 주장할 수도 있으나 그럴 경우, 미국의 전략과 양해 아래 추진하는 독자 핵무장과 달리 무역보복과 국제여론에서 한국이 고립될수 있다.
따라서 기존 정부의 핵확장 억제정책방침을 바꿔야 한다는 부담이 있긴 하나, 지금부터라도 독자핵무장 필요성을 한국정부가 발언하고 검토해야 한다. 오히려 그것이 미국의 이해와 양해를 선제적으로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즉 피할 수 없는 한국 핵무장화를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이루기 위해 정부가 때를 맞춰 발언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석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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